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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의 생각

헬라어를 왜 배워야 하는 가?

by 정직한 글쟁이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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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Qub3ZQI94U

 

처음에 헬라어를 공부하고자 했을 때는, 교회에 대한 그리고 신앙에 대한 여러 갈등들이 있던 시기였고,

신학대학에 가서 성서학을 전공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보다는 헬라어를 늦게 공부하기 시작해서 자신이 없었던 탓도 있고, 아무래도 환경적으로 막 관심 갖기 시작한 히브리어보다는

헬라어 공부할 때 보다 쉽고, 간결하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원어 공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던 찰나 제가 그토록 흠모하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바로 복있는 사람의 마운스 헬라어 문법입니다.

 
진실로 아는 만큼 보입니다.

 

고전에 대한 제 이야기를 잠깐 하면,

저는 3년간 매일 6시간씩 고전어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앙세계와 충돌하는 부분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고전문헌학적 텍스트 접근방법을 가지고 성경을 대하게 된, 한동안은

설교시간에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원어 성경을 펼쳐놓고 원문분석을 하고 있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기독교와 성경의 세계 안에서만 살아서 그 밖에 대해,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점차 성경이 쓰인 동시대와 그 시대의 문헌들을 연구하게 되면서 조금 충격을 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메시지 성경과 성경신학스터디 바이블이라는 귀한 지도를 만나

성경과 신앙의 전통들이 만들어지고,

전승된 과정과 배경에 대한 큰 틀을 이해하며 조화를 이루는 중에 있지만 말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고전학, 고전어 공부를 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점은

아무래도 성경과, 라틴어와 헬라어로 쓰인 여러 교부 문헌들을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저는 안양대학교 HK+사업단에서 몇몇 고전학자 및 신학자들이 매주 모여 교부 문헌을 강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

초기 기독교의 문헌들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더욱이 헬라어는 교부문헌을 공부하려고 해도 신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지적 분위기 사회의 사회상과 같은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원전으로 성경 한 권을 다 읽는데 대략 2년 반가량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도 함께 참여했고,

도움을 받은 고전학 전공자들은 번역은 잘 할 수 있지만, 신학적인 내용을 잘 몰고,

신학자들은 그 신학자의 신학적인 내용은 잘 알지만, 그 용어라든가 개념의 형성사나,

난해한 구문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었기에

저 길동은 그 모든 걸 아우르며 깊고 넓게 그 모든 걸 다  마운스 헬라어 문법이 마치 복음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 글을 접하는 교부학에 관심을 가진 신학생이나 성도님들에게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헬라어와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고전을 많이 읽고 연구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중세 근대를 넘어오면서 학자들이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전제들이나 논증의 전통들을 그 언어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도사들에게도 예화 위주의 설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본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본문 해석의 역사적 전통들을 통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성경 자체를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하는데 헬라어는 필수적입니다.

성경을 원어로 꾸준히 읽는 것은 필요합니다.

 

한 초기 교회 교부들을 읽는 것들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헬라어를 배워서 고전문헌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반면교사인 선생님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게 바로 마운스 헬라어문법입니다.


저는 요즘 어느 설교자의 설교가 좋으냐고 이리 저리 소위 설교 쇼핑하러 다니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근원적인 말씀과 복음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m)”이었던 것처럼,

다른 누가 뭐라고 했다는 것에서 떠나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어느 누군가는 파파고가 등장하고 AI가 자동번역을 말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헬라어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찾아보시면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 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쓸모없는 것을 붙들고 씨름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헬라어를 잘한다고 목회를 잘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쓸모없이 보이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즉 클래식이라는 말은 함대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인생의 위기 순간에 함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읽었던 고전의 비극들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굴곡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락에 떨어진 인간들을 책으로 만나면서 역설적이게도 살아 갈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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