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거나 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 때문에 그렇다. 과학을 신성화해서 그럴 것이다.
심지어 과학에서도 최근 물리학 열풍의 주역 김상욱 교수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라고” 역설했다.
과학에서 진리는 크게 세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절대적인 진리(변하지 않는 진리), 둘째 과학적인 진리, 셋째 권위적인 진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동일한 진리라고 보지만
개별적으로 볼 때 절대적인 진리와 과학적인 진리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지구를 온 우주의 중심으로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천문을 가르치다 보니
여러 문제를 발견했다.
즉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이 도는 것은 멀고 가까움에 의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화성이나 금성을 지구 중심에 놓고 돌리는 것은 도저히 궤도 계산에 맞지 않아서 그렇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당시
땅에 있는 것은 불완전하고 하늘에 있는 것만 완전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조차 케플러나 뉴턴이 등장해 그 역시 틀렸다는 게 알려졌다.
즉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도는 것은 말했지만
사실 하늘 궤도가 동그랗다는 것은 그 역시 수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플러가 본 하늘 궤도는 동그랗지 않았다.
궤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플러는 하늘이라고 동그랄 필요는 없기 때문에 타원궤도를 만들었고,
갈릴레이는 자기가 망원경을 통해 본 하늘과 태양을 보니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태양 안에 있는 흑점들을 발견했다.
즉 하늘도 완전하지 않구나, 달에도 울퉁불퉁한 곰보가 있으니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생각한 발견으로 과학사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타원 궤도의 법칙
즉 중력의 법칙이 태양계 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지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에 적용되지 않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러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역시
수십 년 동안 동료과학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았던 이론이었다.
이처럼 과학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론들이
하나의 가설임은 분명하고
과거는 물론 현재의 정직한 과학자들 역시
겸손하게 그 이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진리의 측면이 더 강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의 진리를 현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다음 뉴턴의 진리도 아인슈타인에 의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이 밝혀졌다.
바로 태양계 안에서만 적용되는 진리임을 말이다.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태양계 안에서 적용된다는 이 이론도 아인슈타인보다
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과학자가 등장하면 모두 가설임이 밝혀질 이론들이다.
일례로 최근 양자역학에 따르면 중력의 법칙 역시 거시 세계에서만 적용된다는 진리임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과학적인 진리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며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학을 좀 공부했다고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고 과학에 대해 엄밀하게 따져본다고
이 세계의 근원과 세상을 전부 알 수 없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이 과학이라는 맹목적 신앙으로 표현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 과학에 대해 엄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결과지만 말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을 믿건 믿지 않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헐떡이는 마음으로 그분을 찾지 않아서 그렇다.
시편 42: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
앞에서 살펴봤듯 과학적 지식이란 결국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사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이끌어 낸
귀납법적 법칙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귀납적인 연구 방법으론 결코 절대적인 진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과학을 믿는다고 유식한 척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과학은 이 세상에 있는 신비와, 거룩한 것들까지 모두 까발리려고 한다.
신비의 세계는 그냥 신비롭게 놔둬야 하는데, 그 신비가 안 밝혀지니까 없다! 이런 식의 태도가 교만한 거다.
신비의 세계는 어떻게든 뒤져봐야 결국, 까발려지지 않는 데 말이다.
인간의 본성상 이를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려 하지 않으니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일삼는 거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다 이런 소리를 덧붙인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덧붙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어리석음을 넘어 겸손하지 않아서 그렇다.
본래 교만 자체는 알지 못함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의 교만 역시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모르니깐 없다고 말하는 논리다.
하이데거가 그 짓을 참 많이 했다.
자기가 이해 안 되면 별거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거다.
이런 내용도 사실 이미 유치원 시절 모두 배운 내용이다.
어릴 적 이솝우화를 떠올려 봐라.
여우 새끼와 신포도 이야기가 무얼 가르치나.
여우새끼가 포도를 먹으려고 깡충깡충 뛰어봤는데 도저히 닿지를 않으니까
욕하면서 저건 시큼해서 먹지 못해 하는 원리와 하등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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