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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비프:성난사람들>을 보고

by 정직한 글쟁이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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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BEEF(성난 사람들)>은 아시안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각본, 연출, 연기력, 예술성, 디테일 등에서 탄탄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분노'와 분노의 표출로 인한 사건들을 주제로 다루며, 이를 단순한 악인의 산물이나 패망으로 그리지 않고 신선한 방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작품은 분노를 애처롭게, 반갑게, 공포스럽게, 사랑스럽게 그려내어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고 보듬으며 해소지점을 찾도록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작품은 당신의 분노는 입체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주인공들의 분노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내면에 쌓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분노는 단순히 오늘의 사건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 사건이나 가족들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있었던 것임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분노를 다양한 감정으로 그려내어 시청자들이 자신의 분노를 죄송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에이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으로 이민한 부모의 경제적 문제, 부모의 갈등과 외도, 정서적 유기 등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를 목도하고도 덮어쓰며 살아온 괴로움으로 인해 분노가 생겨났습니다.

에이미는 남편과의 가정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아시안으로서의 차별과 무시의 시선에 항상 부딪힙니다.

게다가 시댁에서는 허울만 끌어안고 사는 명예만 있는 가문의 압박과, 남편과 분노를 나누려고 할 때도 그것을 긍정적인 면으로 덮어버리는 것에 대한 섭섭함으로 분노는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증폭됩니다.

에이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사랑을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니는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와 부모의 갈등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대니는 첫째 아들로서 다른 많은 1.5세 이민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니는 낯선 곳에서 부모와 형제를 도와주기 위해 언어와 행정 능력을 빠르게 습득해야 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돌보며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추방당하고 동생마저 대니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대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매일 가혹하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동안 희생을 감추고 억누르고 있었던 대니의 분노는 언젠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의 고난과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인정을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이미와 대니의 분노는 입체적이었습니다.

이 분노는 꽤 깊게 박혀 있어 견고하고 단단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점진적이고 연쇄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두 주인공이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상처도 있었을 것이며,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은 온순하다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어려움을 솔직하게 표출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이미와 대니의 분노는 단순한 시선이나 단편적인 접근으로 다루어지면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극 중에서 로드 레이지 사건을 겪은 에이미에게 남편 조지가 건넨 조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멈춰, 긍정적인 일에만 집중해. 알았지? 감사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다.”

필자 길동은 '감사 일기'를 권유하는 대목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감사 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 일기만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상처를 입거나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감사 일기만을 제안하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문화나 가정에서는 '분노'에 대해 참고하고 인내하며 감사할 점을 찾으라는 조언이 주로 나옵니다.

 지만 <성난 사람들>은 분노를 꺼내고 직면하며 다스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고 분노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합니다. 분노를 덮어두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에이미와 대니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으며, 그들은 복수를 통해 마음을 닮아갔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복수는 가끔과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내면은 보편적이고 공감할 만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이미는 사업을 성공시키고 많은 인정을 받았지만, 실은 가짜 전문가였고 위험한 열매를 착각하여 목숨을 건드릴 뻔했습니다. 대니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지은 집을 잘못해서 불태워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일터, 교회, 가족관계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전문가인 척 해야하는 상황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타인의 신뢰와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성난 사람들>은 에이미와 대니의 삶을 밖에서부터 시작하여 속마음까지 들어와 촬영한 결과물처럼 느껴집니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로서 행복과 인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분노 폭발을 통해 내면에 숨어있던 것들을 꺼내고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는 마치 뱃속의 음식물을 다 토해내듯이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밖으로 내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왜곡된 종교적 믿음이나 행위로 눌러놓기만 했다면, 평온과 인내의 허울로 가둬두기만 했다면, 이 분노는 결국 자신을 병들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속 밖으로 토해내야만 우리는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난 사람들>은 분노뿐만 아니라 인정에 대한 중요성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인정의 부재가 한 사람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와 동시에, 인정이 한 사람에게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대니는 동생 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형으로서 살아가고, 폴은 대니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동생입니다.

에이미는 남편 조지로부터 감정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며, 조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예술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또한 아내로부터 자신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성난 사람들>에서는 인정의 부재를 겪는 가까운 사이의 인간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인정을 주거나 받으면서 행복감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대니는 조지와의 만남을 통해 인정과 감동을 주며, 조지는 대니에게 "넌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로 화답합니다.

이를 통해 대니의 복수심은 사라지고, 조지는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인정을 받고 상처를 치유합니다.

에이미와 폴의 관계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폴은 에이미로부터 인정과 위로를 받고, 에이미는 폴로부터 자신이 받지 못한 인정과 기대를 받아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에이미가 말하는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일'은 최악의 상황에서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정받을 만한 일 앞에서 당연하게 받는 칭찬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상처, 현재의 실패와 좌절, 망가진 모습까지도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내면의 상처와 분노를 직면하고 꺼내고 나눌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분노를 잘 다루는 방법'은 좋은 때뿐만 아니라 나쁜 때에도 곁에 있어주는 좋은 공동체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이나 교회와 같은 공동체를 통해 가능합니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서는 대니가 (돈을 벌 목적으로) 한인 교회에 찾아갔던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 예배에서 대니는 오랜만에 혹은 거의 처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과 인정을 경험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한 번의 위로로 모든 상황과 감정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떤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크게 상처받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다가 내 안의 모든 울음을 꺼내놓는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지 하나님을 느낀 것만으로는 아니라, 내 모든 어두움을 꺼내놓을 수 있는 분을 만났다는 감격과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그런 순간들을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분노를 다루는 일은 혼자서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소속된 교회에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거짓 없고 조건 없는 사랑이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보다,

조건 없는 사랑의 원천인 하나님과 함께 분노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괜찮아. 다 보여. 안 숨겨도 돼, 괜찮아.”

 

에이미와 대니가 '고요 하우스' 매각 성공과 부모를 위한 집 완공으로 성공을 이루었던 한 때, 그들은 환상을 통해 깊고 어두운 '바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환상은 현실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내면 감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사업이나 가정에서 성공을 거두어 주변에서 높이 평가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사실상 '바닥'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문제나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우리의 바닥, 즉 문제의 근본이 우리 자신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척하며 문제를 숨기고 전문가인 척 하면서 살아가면서는 해결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닥을 직시하는 것을 꺼리고 내려가기를 꺼려해서 숨겨둔 것들은 결국 더 큰 분노로 이어질 뿐입니다.

에이미와 대니처럼, 우리는 결국 바닥에 누워 마주보고 나서야,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닮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대면하면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고 나니 진짜 아무것도 없네.”

“더 자주 이럴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에서 생명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어둠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빛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더 나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선함'에 전문가인 척하기보다는 '악함'을 공감하고 인정하며, 하나님 안에서 (왜곡되지 않게)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직시하며, 그 안에서 변화와 회복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비프:성난사람들>을 보고 - "당신의 분노는 결코 납작하지 않다" : 문화선교연구원 (imwe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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