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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의 생각

칼을 뽑는 비겁함, 손을 묶도록 내어주는 왕의 용기

by 정직한 글쟁이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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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화요일 마가복음 14:43-52 

칼을 뽑는 비겁함, 손을 묶도록 내어주는 왕의 용기

 

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정말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상대방의 명예를 짓밟는다.
내 자존심을 건드린 댓가로 생명을 요구한다.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지혜다.

 

 


정경심 교수의 추천서 한 장으로 한 가정은 풍비박살이 났다.
 그래서 딸 조민은 한순간 정유라가 됐다.
 법치사회에 살고 있기에 자연히 감수해야할 법의 한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심판이 너무 과하다.


 그 결과 피의자가 피해사실을 반성할 기회는 박탈당하고,

가해자 역시 피해자가 되어 분노심만 가득하게 된다.

 

 세상이 진짜 미친 세상 같다. 


 가해자를 없애는 방향으론 사회가 결코 정의로워 질 수 없다. 

피해자를 없애는 방향으로 우리부터 사랑과 정의의 균형을 갖춰야 한다.

그게 십자가의 정신 아닐까? 


 영화 밀양 속 주인공 신애(전도연)와 살인자에 죄의 크기는 분명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이를 사랑으로 덮으며 신애나 살인자나 똑같은 죄인으로 매도한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면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하나님조차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죄인들을 대하셨다고 보는 건  비성경적이다.

분명 구약에 명시된 제사장들의 죄와 일반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제는 그 크기나 형벌이 다르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런 죄들을 현대에 이르러 살인과 미움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것은 사랑도 아니며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대통령부터 여야 대표가 전부 법조인이다. 

그런데 미쉬파트와 체덱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에 들끓고 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목에 칼이 드러와도 진실을 이야기해야겠지만 

정의시행과 그 심판의 경우는 겸손하게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돈 없고 빽없는 내 인생으로서는 그래서 더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그래야 하나님도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피맺힌 이 원한을 감사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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