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욱이의 생각

가나안 나눔 총정리

by 정직한 글쟁이 2023. 8. 20.
반응형

가나안 나눔 총정리

 

 

 

가나안의 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로 부름 받을 때

하늘의 영광에 대한 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와 저주가 가득한 땅에서 살지만,

하늘의 영광을 향해 삽니다.

 

베드로전서에서 그 영광을 향한 삶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1:7).”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고,

그 때 우리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비전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말씀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입니다.

 

정금은

원석을 용광로의 뜨거운 불로 연단하여 만들어집니다.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지닌 자에게

칭찬과 존귀와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고난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기 위해 치르는 시련입니다.

잘 참고 견디면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영광에 고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금 같이 빛나게 될 것을

목표로 훈련해야 합니다.

 

 

 

실질적인 출애굽

 

우리의 부르심은 높은 부르심이고

우리 위해 예비된 것은 영광과 존귀지만,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고

저주 아래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인해 담대합니다.

 

그런데 주를 알수록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어둠입니다.

 

애굽에 살던 때 자연스럽고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높은 부르심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알 때

우리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 존재임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제는

몸만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애굽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벗어나야 가나안에 들어가고

소망으로 사는 것은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가나안 백성의 정체성으로

지난 애굽의 삶의 방식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망의 문제

 

애굽에서의 삶, 세상에 속한 삶은 욕망과 불순종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2-3).”

 

전에는 우리가 ‘불순종의 아들들’ 중에 있었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지냈습니다.

육체의 욕망이 불순종의 죄를 낳고,

이로 인해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죄와 진노 아래 있음의 배후에는

육체의 욕망이 있습니다.

 

왜 욕망이 문제입니까?

 

욕망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좋은 것들이 가득하고

그것을 즐기도록 우리 마음에 욕구를 주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 앉으면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고

인생이 행복합니다.

 

 

우리 안에 욕구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대상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름다운 것을 앞에 놓아두고

그것을 먹지 말고 보지 말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 먹고 재미있는 이야기 듣고

재밌어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롬 14:20).”

 

 

만물이 깨끗하고 선하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본성입니다.

 

그런데 왜 육체의 욕망이 문제됩니까?

 

그것이 마음을 지배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게 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나서

그녀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선악과나무를 보고 생긴 그의 욕망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해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이 진노의 심판의 원인이 되는 이유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경계를 넘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양자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난 육체의 욕구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라,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건강, 아름다움, 행복, 음악, 맛있는 음식 모두

하나님에게로부터 옴을 인정하고

구해야 하고 받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러나 하나님보다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하는 욕망은 끊어야 합니다.

 

이것은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욕망은 애굽에 살 때

우리 삶을 병들게 한 원인입니다.

 

그것을 지니고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광야

 

광야는 애굽에 살 때

우리를 이끌었던 육체의 욕망을 깨는 장소입니다.

그래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광야의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기 위해

낮추어져야 하고 깨어져야 합니다.

 

떡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이 육체의 욕망입니다.

 

애굽에서 나왔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영혼의 소망을 거스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육체의 욕망을

거슬러 싸우는

영혼의 싸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이것은 욕구 자체를 부정하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양심대로 살려고 애쓰며 충동을 억압하는 도덕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아래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일하셔야

육체의 욕망을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라는 말씀에 따라

그 동안 삶을 이끌었던 욕망을

하나씩 점검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것은 금욕은 아니지만 절제의 습관입니다.

 

적절한 욕구와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제 거의 중독 수준이 되어

한도를 넘어선 모든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먹는 음식, TV나 핸드폰 동영상 시청, 게임하는 것,

물건 사는 것, 쓰는 것 모두 검토해서

영혼을 거스른다면 다 바꾸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천이 없이는 육체의 욕망 때문에 가나안의 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

 

당신은 매일 끊임없이 제 안에서

사악한 옛 아담의 모습들을 제거하고

새사람의 창조를 완성시키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이와 같은 새사람의 창조로 인해

저는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페넬롱

 

 


본 포스팅은

제 독창적인 사상이 아닌

샬롬누리영광교회

서충원 목사님을 통해 알게 된

소중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발견하고

또 정리한 글임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