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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의 생각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by 정직한 글쟁이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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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을 공부하면서 필자 길동은

6살 때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랐다.

 

이는 초등학교 시절, 무신론자도 아니면서

어정쩡하게 신앙생활을 한 이유이기도 했다.

 

 

부모님께 효도했는데 장수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그 모습을 통해, 당시 어리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지도 않고 또 약속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명기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비록 초등학생 때의 모습이지만

당시 나는 욥의 친구들이 되어 홀로 이런 독백을 했다.

 

1. “아버지는 잘못한 게 없으신데 왜 아버지가 죽었나?

이는 하나님이 하신 게 아닌 마귀가 한 일이다.”

 

2. “내가 모르는 죄를 지은 게 있으니까

아빠가 벌 받아서 돌아가신 거 아닐까?”

 

하나님 앞에 아빠는 분명 잘못한 게 없으셨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당하셨는지

이런 질문들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한 질문들 가운데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모든 행복과 불행은 그 나름의 역할들이 있었다.

 

고아로 태어난 것,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것 등

그 자체로만 보면 불행한 일들이

인생 전체 그림에서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통찰을 이루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폴 트루니에 역시 고아였고

그는 일찍 아버지 잃고 어머니 역시 2살 때 잃은 가여운 사람이었다.

 

인생의 불행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 수 없지만

내가 경험한 고통은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한 새로운 경로를 열게 하며

이를 통해 남다른 경험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 고통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내가 섬길 수 없는 사람들을 공감하거나

섬길 수 있는 귀한 원료가 부재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은 타인의 백신이 될 수 있다.


 

물론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고통을?

악한 일들이 나에게 왜 벌어졌냐?

질문하면

인간의 불행과 고통이 죄로 인한 것이든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것이든,

인간을 위한 것이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걸 함의할 수 있다.

 

하지만

다 알 수 없어도,

적어도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 

 

당시에는 고통과 불행이 너무 큰 이슈가 되어

도무지 용납할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다 보면

고통과 불행보다

바르게 되는 게

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행복해지는 법? 행복의 추구보다 더 중요한 것 (brunch.co.kr)

 

다시 말해,

그런 고통이 없는 것보다

고통과 씨름하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상황 가운데는 모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길동이의 지혜 한 스푼

 

1. 계명은 계명의 준행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졌지

계명의 판단자로 계명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성경은 규칙 모음집이 아닌,

성경에서 말씀이 주어질 때

그 명령을 따라 행할 때 이러시는 분이구나 하는

그 명령에 준행하는 자로서 그 명령이 주어졌다.

 

만일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이 여기에 맞춰서 하셨나?

하지 않았나?로

 

계명을 접근한다면,

이는 그 태도에서부터 이미

율법의 준행자가 아닌

판단자로서 하나님을 심판하기 위한 용도로

계명을 살펴보는 것이다.

 

바로 이게 신정론의 논리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때 사용하는 패턴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 이렇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면서

왜 이렇게 하세요?

묻는다면

만약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전부라면

그런 비판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자 안에 갇힌 방식으로

하나님을 제한한다면,

 사랑의 하나님이신 그분이

어떨 때는 때리시고 징계하시는 모습을 통해

그런 하나님의 모습은 가짜야 하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진짜고

지금 때리시는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일까?

그건 아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제한해서 본다면

하나님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일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틀렸거나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

가짜가 되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기뻐하다가도

 하나님이 더 좋은 걸 주시려고

그걸 멈추고 다른쪽으로 인도하시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이는 내 편에서 내가 만든

상자 안에 갇힌 하나님을

고집하고 붙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게 늘 그렇다.

하나님 없이도 자기가 익숙한 걸 고집하면

그 사람은 평생 고착해서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생은 굉장히 넓고 다양한 원리가 작용한다.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때

이게 나를 위한 것임을 알면,

이 안에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게 뭘까?

이렇게 들어가면 유익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다.

 

따라서 하나님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편협한 생각을 넓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하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
(사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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