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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이의 생각

나는 불붙을 수 있는 자인가?

by 정직한 글쟁이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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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월요일 시편 104:1-18 나는 불붙을 수 있는 자인가?

 

홍성욱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시들지 않는 영광이 기준이 아니라면

29살에 원주민의 창에 죽은 짐 엘리엇은 박해망상을 극복하지 못한 바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오늘날 선교단체나 기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목인데 이걸 병리적으로 볼지 아니면 선물의 사랑으로 볼지는 그의 삶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필요의 사랑을 충분하게 경험했다.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그는 수재였고 동시에 레슬링부의 챔피언이자 스타였다.

또 26살에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고, 딸 발레리를 낳았으니

그는 현실도피 수단으로 종교가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짐은 오랫동안 홀로 기도한 뒤,

이국땅 남아메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했다.

C.S 루이스가 말한 바로 선물의 사랑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부르심도 없이 그저 설교만 듣다가

“정작 감사는 마음속에 생기지도 않으면서 다들 이러잖아 말하며
짐 엘리엇의 믿음을 본받는 게 아닌 그의 겉모습만 연기한다.”

그럼 자연히 지칠 수밖에 없고 본인 스스로도 가책이 느껴지니

전형적인 바리새인이 되고 만다.

 

그럼 30대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불행한 사람이었을까?

그저 그분은 가학을 즐기며 인생을 부정한 마조히스트였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행복을 전도한 위선자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분은 진짜 행복한 사람이었다.

순교자를 더 이상 우울하게 채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과 바울, 심지어 짐 엘리엇도 행복한 사람이지

동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했다.

“우리가 그분을 기뻐하는 만큼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

 

나 역시 하나님이 너무 좋아

그 부르심에 내 삶을 불붙일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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